강승혜 Seunghey Kang
꽤 오랫동안 비현실과 현실을 한 공간에 중첩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그 비현실이라는 것은 어린 시절의 기이한 상상이거나 자연의 유유자적함이기도 하고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공통적으로는 현실의 결핍을 형상화한 것이다. 목탄으로 그려진 동물들은 산수화 속의 작은 인물처럼 감정이입이 된 존재이며, 색을 지닌 평면의 환경 속에 놓여있다. 칼라와 흑백, 3차원과 2차원을 각각 현실과 비현실의 회화적 표현으로 상정했을 때 서로의 경계가 모호한 채로 공존함을 표현한 것이다. 이는 첫 개인전 <거실과 다락>에서 언급했던 ‘현실과 비현실은 공존해야한다’는 생각의 연속선상에 있다.
이렇듯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또 다른 차원은 언제든 곁에 맴돌며 설레임과 절망감을 번갈아 선사한다. 마치 장자의 꿈처럼 무엇이 진짜인지 종종 구분할 수 없으며 내내 그리워하면서도 그리움의 대상에 닿을 수 없다. 그것은 아름다운 몽상이거나 혹은 부질없는 욕심일수도… 그래도 나는 아직 머물고 있는 이 공간을 흘깃 보며 안도한다. 이런 그리움, 결국 누구나 가슴 한 켠에 지니고 있지 않은가.
작업 중 일부는 ‘비현실’의 범위에 ‘죽음’이라는 개념, 사건, 느낌을 포함시켜 이를 중심으로 발전시킨 형상들이다. 즉 그 작품들에서의 현실과 비현실은 곧 삶과 죽음이며 이 두 가지가 중첩된 공간이다.
몇 해 전 세상에서 아주 소중한 두 존재를 떠나보냈다. 듣기에나 익숙했던 죽음이 내 삶 안으로 직접 찾아왔을 때 그것은 평소에 느껴온 것과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가왔다. 그 공허함의 무게는 그 사건을 어떤 식으로도 규정짓지 못하게 하여 수없이 많은 종교적, 철학적 정의와 예측과 경험들을 뒤져보아도 비로소 ‘그런 거였어.’라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접어두고 다시 일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흐트러지고 뻥 뚫린 마음을 정리해주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겨울, 억지로 끌려가듯 나선 여행길에서 차창 밖을 응시하던 멍한 눈에 들어온 것은 앙상한 나무들이 촘촘히 꽂힌 산들의 둥글둥글한 능선이었다. 초록기운이 거의 없는 알몸뚱이 산들은 순간 엎드린 코끼리로, 겨울잠을 자는 곰으로... 둥글게 몸을 웅크리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잠을 자는 다양한 포유동물의 모습으로 보였다. ‘자연회귀’도 좋고 ‘애니미즘’도 상관없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웠던 한 현상과 화해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것은 어둡고 차갑지 않은 죽음에 관한 작업이다. 가버린 존재들에겐 진혼을, 남겨진 이들에겐 ‘그들은 사실 그리 멀리 가지 않았을지도 몰라.’ 라는 위로를 담았다. 또한 언젠가 죽음이 나에게로 찾아왔을 때를 위한 마음의 예방주사라고 해도 좋겠다. 동물들이 정말 편안하게 잠들어있는 장소는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평범한 산골마을, 작은 섬, 모처럼의 드라이브 길에 잠깐 차를 세워 쉬게 되는 저수지와 같은 흔한 공간이다.
임종을 앞둔 누군가가 고해성사를 위해 찾아온 신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천국에 가고 싶지 않아요. 거긴 내게 익숙한 곳이 아니니까요.”
그 비현실이라는 것은 어린 시절의 기이한 상상이거나 자연의 유유자적함이기도 하고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공통적으로는 현실의 결핍을 형상화한 것이다. 목탄으로 그려진 동물들은 산수화 속의 작은 인물처럼 감정이입이 된 존재이며, 색을 지닌 평면의 환경 속에 놓여있다. 칼라와 흑백, 3차원과 2차원을 각각 현실과 비현실의 회화적 표현으로 상정했을 때 서로의 경계가 모호한 채로 공존함을 표현한 것이다. 이는 첫 개인전 <거실과 다락>에서 언급했던 ‘현실과 비현실은 공존해야한다’는 생각의 연속선상에 있다.
이렇듯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또 다른 차원은 언제든 곁에 맴돌며 설레임과 절망감을 번갈아 선사한다. 마치 장자의 꿈처럼 무엇이 진짜인지 종종 구분할 수 없으며 내내 그리워하면서도 그리움의 대상에 닿을 수 없다. 그것은 아름다운 몽상이거나 혹은 부질없는 욕심일수도… 그래도 나는 아직 머물고 있는 이 공간을 흘깃 보며 안도한다. 이런 그리움, 결국 누구나 가슴 한 켠에 지니고 있지 않은가.
작업 중 일부는 ‘비현실’의 범위에 ‘죽음’이라는 개념, 사건, 느낌을 포함시켜 이를 중심으로 발전시킨 형상들이다. 즉 그 작품들에서의 현실과 비현실은 곧 삶과 죽음이며 이 두 가지가 중첩된 공간이다.
몇 해 전 세상에서 아주 소중한 두 존재를 떠나보냈다. 듣기에나 익숙했던 죽음이 내 삶 안으로 직접 찾아왔을 때 그것은 평소에 느껴온 것과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가왔다. 그 공허함의 무게는 그 사건을 어떤 식으로도 규정짓지 못하게 하여 수없이 많은 종교적, 철학적 정의와 예측과 경험들을 뒤져보아도 비로소 ‘그런 거였어.’라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접어두고 다시 일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흐트러지고 뻥 뚫린 마음을 정리해주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겨울, 억지로 끌려가듯 나선 여행길에서 차창 밖을 응시하던 멍한 눈에 들어온 것은 앙상한 나무들이 촘촘히 꽂힌 산들의 둥글둥글한 능선이었다. 초록기운이 거의 없는 알몸뚱이 산들은 순간 엎드린 코끼리로, 겨울잠을 자는 곰으로... 둥글게 몸을 웅크리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잠을 자는 다양한 포유동물의 모습으로 보였다. ‘자연회귀’도 좋고 ‘애니미즘’도 상관없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웠던 한 현상과 화해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것은 어둡고 차갑지 않은 죽음에 관한 작업이다. 가버린 존재들에겐 진혼을, 남겨진 이들에겐 ‘그들은 사실 그리 멀리 가지 않았을지도 몰라.’ 라는 위로를 담았다. 또한 언젠가 죽음이 나에게로 찾아왔을 때를 위한 마음의 예방주사라고 해도 좋겠다. 동물들이 정말 편안하게 잠들어있는 장소는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평범한 산골마을, 작은 섬, 모처럼의 드라이브 길에 잠깐 차를 세워 쉬게 되는 저수지와 같은 흔한 공간이다.
임종을 앞둔 누군가가 고해성사를 위해 찾아온 신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천국에 가고 싶지 않아요. 거긴 내게 익숙한 곳이 아니니까요.”
Education
1998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Exhibition
2018. 2. 제2회 개인전 사이아트 도큐먼트
2012 Loose Box3 전 (강승혜, 박계숙, 홍세연) 갤러리 현
2006 Loose Box2 전 (강승혜, 박계숙, 홍세연) Srai Gallery 일본 도쿄
2006 Loose Box 전 (강승혜, 박계숙, 홍세연) 인사아트센터
2005 청년작가포트폴리오 2005전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관
2005 제1회 서울청년비엔날레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2004 한국현대미술 파리전 갤러리 파리 가나 보부르
2004 제1회 개인전 <거실과 다락> 갤러리 가이아
1998 신진작가 발언전 경인미술관